너무나 다른 방의 넓이
홀베크에서 '프라이엠'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프라이엠'이란 스스로 신변을 차릴 수 없게 된 이들을 위한 시설이다. '프라이에'는 수발, '엠'은 가정이란 뜻이므로 일본의 특별양호노인홈이나 미국의 너싱홈(nursing home)에 해당하지만 이 책에서는 덴마크어를 그대로 쓰기로 하겠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인데 후에 설명하겠다. 노인복지과의 잉가리스 라우아센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프라이엠은 홀베크에 4개 있으며, 그 규모는 각각 23방, 28방, 56방, 130방입니다. 130방은 너무 큽니다. 그래서는 가정적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작은 것 몇 개로 나눌까 합니다."
일본에서 특별양호노인홈이나 노인보건시설의 규모는 '○○침대', '○○침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상식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시설도 마찬가지이다. 시설의 규모를 '○○침상'으로 헤아리는 일본과 '○○방'으로 헤아리는 덴마크와의 차이, 거기에서 핸디캡을 지닌 이들을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화적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 들어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프라이엠'을 찾아가 보았더니 '방'으로 헤아린 까닭을 곧 알게 되었다. 한 사람 함 사람이 현관이 달린 자기 방을 가지고 있었다. 방은 남향이며 직접 마당에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부부에게는 방 두개가 제공되며 하나는 두 사람의 거실로, 또 하나는 침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내가 '프라이엠'을 '특별양호노인홈'이라고 번역하지 않기로 한 첫째 이유는 방의 넓이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좁은 것이라도 20평방미터, 즉 7평 정도는 된다.
덴마크 사회부는 1961년, 병약고령자를 위한 복지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호소하며 근본적 개혁에 착수했다. 1964년에 법 개정, 프라이엠의 기준을 화장실과 샤워룸이 있는 독방으로 정했다. 거실 부분만 1인당 최저 15평방미터(약 5평), 즉 1인당의 방 면적은 20평방미터(약 7평)이상이다. 25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지금 일본 기준의 2.5배에 가깝다. 그런데 덴마크의 모든 프라이엠의 직원이 "일본 것에 비해 좁아서 무척 놀라셨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만한 넓이에 왜 '좁다'고 할까?
스웨덴의 '서비스휴스'를 방문했더니 그 의문이 풀렸다. 서비스휴스의 '휴스'는 집이라는 뜻이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도오미 붙임 연립주택'이다. 스웨덴에서 보통의 서비스휴스란 이런 것이다.
현관 가까이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쓰기 편리하게 배려된 욕실 겸 화장실이 있다. 덴마크는 샤워시설뿐이므로 이쪽이 확실히 더 고급이다. 넓은 거실, 그것을 지나 침실과 발코니, 현관에서부터 넓은 복도의 끝까지는 휠체어를 타고도 조리할 수 있는 식당겸 주방이다. 즉 1LDK[(거실(Living room), 식당(Dining room), 주방( Kitchen)을 하나로 꾸민 방을 약칭함-역주)]가 표준이다. 이것과 비교하면 덴마크의 방 하나씩의 프라이엠은 확실히 좁아 보인다.
'스웨덴보다 더 부자인 일본의 시설은 틀림없이 스웨덴의 서비스휴스보다 더욱 넓고 호화스럽겠지.' 덴마크 사람들은 그렇게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엉겁결에 애국자가 되어 '실은 일본의 특별양호노인홈은···' 하는 말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이런 넉넉한 공간을 반신불수인 사람도 중증관절염을 앓는 사람도 휠체어로 다니고 있다.
휠체어가 쓸모없는 일본의 병원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돌아와서 일본의 시설을 보면 그야말로 '○○침상'으로 헤아리기가 제격이어서 우울해진다. '틀별양호노인홈'의 1인당 거실 면적은 겨우 8.4평방미터이다. 노인보건시설에 이르러서는 '6평방미터도 우선 허가한다'는 특례조항이 있다. 특별양호노인홈의 대용품이 되고 있는 노인병동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기준은 놀랍게도 4.3평방미터. 옆 침대와의 간격이 40~50센티미터인 병원도 드물지 않다. 이래서는 휠체어가 쓸모없다. 침대 위에 누인 채 그대로 방치되는 나날. 근육은 위축되고 뼈에서는 칼슘이 빠져 나가고 관절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잠자리 상태'가 대량생산되고 만다.
사회사업대학의 미우라 후미오 교수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국제회의에서 고령자 시설의 넓이가 화제로 올랐던 때의 일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어떻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은 미우라 교수는 특별양호노인홈의 1인당 면적기준을 정확히 대답했다. 그랬더니 상대편은 질문의 뜻이 미우라 교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던 속도를 늦추고 말을 끊어 가면서 "내가 질문한 것은··· 추억이 담긴 물건 등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노인이 생활하는 공간··· 그 면적인데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의 시설이 이용자를 얼마나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사회가 노인에게 얼마나 결례되는 처우를 하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휠체어로 움직여 다닐 수 있는 공간' - '와상 노인'이 복지선진국에는 없는 여덟 번째 비밀이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에 둘러싸여
다른 것은 방의 면적만이 아니다. 북유럽의 시설은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독방이다. 한편 일본의 시설은 잡거실(雜居室)이다.
"여자는 세 번 노년을 산다"는 말이 있다. 시부모의 노년을 돌보고, 다음에는 남편의 노년을 돌보고, 그러고 나니 어느 새 자기 자신이 노년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것이 일본 여성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전직 경제기획청장인 다카하라 스미코 여사의 이 명언을 본떠 나도 이런 말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복지시설에 들어가는 사람은 세 번 죽음을 맞는다."
먼저 '나 죽었다' 는 기분으로 입소를 결심해야 한다. 가까이 두고 쓰던 물건은 골판상자 두 개 분량으로 단념해야 한다. 젊은이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고령자에게는 자기 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과도 같은 슬픔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자기를 죽이고' 지내야 한다. 잡거실에서는 언제나 곁에 누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죽음, '생물로서의 죽음'이 찾아온다. 단 전문가의 세계에서는 '잡거실'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인실' 이라든가 '합숙실'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명한다.
"독방은 고독합니다. 다인실로 하는 편이 화기애애하고 외롭지 않습니다."
"독방은 위험합니다. 만일의 경우 사고가 나도 직원이 모르면 가엾습니다. 안전을 위해 다인실로 했습니다."
참으로 친절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마추어다. 전문가들이 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이니 나의 견해가 어리석은 것일까. 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하다.
북유럽의 나라들을 돌아보고 '아마추어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거기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방을 갖고 있다. 커튼이나 융단은 방마다 다르다. 그것도 아름답고 취미가 고상하고 개성이 넘치는 것뿐이다. 가구와 식기와 액자에 넣을 그림, 손자나 자녀들의 사진 곁에 노안으로도 보기 쉽고 걸기 쉬운 특제다이얼이 달린 전화, 냉장고, 관엽식물, 때로는 소형의 피아노까지 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오도록 권하기 때문이다.
내가 프라이엠을 덴마크어로 쓰는 첫째 이유는 특별양호노인홈과는 너무 다른 넓이, 둘째 이유는 이 분위기의 차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독방이라면 '위험'하지 않을까? 문제 없다.
줄을 당기거나 단추를 누르면 도우미 대기소의 벨이 울리는 장치가 마련돼 있어 부르면 곧 도우미가 달려온다.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도 위의 사진처럼 독방에서 살고 있었다.
'외롭지 않게' 하는 배려도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여럿이 모이는 사랑방이 반드시 있다. 취미를 즐기는 방도 있다. 식사를 함께 하는 레스토랑 분위기의 방도 있다. 휠체어를 타고, 혹은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와상 노인'이 없는 아홉 번째의 비밀, 그것은 '움직이고 싶을 만큼 변화가 많고 따뜻한 공간'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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