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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재택복지의 3대 기본장치(비밀 10~12)

by 노인생활코디네이터 2025. 1. 18.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데이센터(낮병동)

 

  일본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부러운 프라이엠이지만 덴마크에서는 1988년 1월 1일부로 그 증설을 중지했다. 시설중심주의에서 재택수발 중시로 대전환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호령 하나로 이런 대전환이 될 턱이 없다. '수발을 배달'하는 가정도우미와, '의료를 배달'하는 방문간호부, 가정의, 작업요법사, 물리치료사, 마지막으로 '복지를 배달'하는 사회복지사로 구성되는 팀이 준비되어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믿음직한 지원장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센터, 식사 서비스, 영송 서비스'의 3대 장치이다. 이런 구조는 스웨덴에서도 똑같았다.

 

  '데이센터', 다른 명칭으로 '서비스센터'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육구만한 넓이, 즉 걸어다닐 만한 거리에 하나씩 설치돼 있다. 프라이엠의 한 모퉁이나 서비스휴스의 1층이 자주 데이센터로 이용된다. 그곳은 자택에서 사는 고령자들을 지원하는 현장이 되고 있다. 몸이 부자유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건강한 고령자들도 인근에서 모여든다.

스웨덴어로 '환영'이라고 쓴 데이센터의 입구에 이용자가 수작업으로 만든 화려한 아플리케가 걸려 있다.

 

  위의 사진은 스톡홀름의 마리아힛센 서비스센터의 입구에 걸린 아플리케이다. 이것은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 한 고령자의 작품으로 센터의 기능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부터 '수예 등 취미활동',  '댄스 등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  '식사와 차를 들면서 담소함',  '신문과 책의 대출 및 열람' 을 주제로 장식되어 있다.

  취미활동은 수예 외에도 도예, 책의 장정, 직물 등 다양하다. "작품은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노부인들의 얼굴에 웃음꼿이 활짝 피었다. "손자 생일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적십자사에 기부도 하지요." 자랑스러운 대답이 이어졌다. 누구든 남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편이 즐겁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센터에는 미용실도 있어 싼 값에 머리를 손질해 준다. 고령의 여성이 아름답게 머리를 다듬고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식사 서비스'도 자택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는 점심을 차려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에 입원시키는 고령자가 있다.

점심을 들면서 담소.. 오덴세의 에이센터에서.

 

  식사는 데이센터의 식당에서 잡담을 즐기면서 할 수도 있고(위의 사진), 몸의 상태가 안 좋을 때나 자택에서 먹고 싶은 때는 배달을 의뢰할 수도 있다. 식사는 식지 않는 특별용기로 운반된다. 감염식, 당뇨병식 등의 특별식도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영송 서비스'가 있다. 전화 한 통으로 휠체어 전용차가 달려오는 시(아래 사진)가 있는가 하면 택시의 회수권을 발행하는 시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고령자의 표정을 밝게도 하고, 몸치장을 하려는 기분도 나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스톡홀름에서 본 영송 서비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가정이라는 이름의 밀실이 아니다

 

  이렇듯 같은 재택복지, 재택수발이라고 해도 실속은 일본과는 많이 다른다. 일본의 재택복지는 평론가인 히구치 게이코 여사의 표현을 빌면 '가정'이라는 이름의 밀실에 수발하는 사람과 수발 받는 사람이 하나로 묶인 채 감금당하는 것이다. 수발에 임하는 부인, 모친, 딸, 며느리는 인생을 즐기려던 갖가지 계획을 단념하는 괴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육아와는 달리 언제 끝날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 결과가 가정불화, 동반자살, 살인이다.

  특히 위험한 것은 부인을 간병하는 고령의 남편이다. 서투른 수발에 지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끝내는 '할머니도 저 세상에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고 지레짐작하고 목을 졸라 죽인다. 일본에서는 이런 비극이 그치지 않는다.

  수발 받는 쪽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에서 처럼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있으면 그 사람의 세계는 '천정'으로 한정된다. 북유럽의 고령자처럼 매일 아침 일어나서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웃음을 교환하는 기회도 잦다. 문자 그대로 시야가 넓어지고 살아갈 의욕이 생긴다. 아침저녁 마음에 드는 옷으로 바꿔 입고 전동휠체어로 데이센터에 간다. 취미나 여행을 즐기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이런 일들이 병원의 훈련실에서 구령에 맞추어 행하는 재활치료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같은 하루의 리듬에 더해 1주간의 리듬이 있다. 예컨대, 편지를 써 주거나 말상대가 되어 주거나 하는 자원봉사자가 주말에 오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또 주말에는 영송 서비스를 이용해 손자나 자식의 집을 방문한다.

  특제의 요트를 조종하여, 다리를 못 쓰는 몸인데도 바다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요트에 대해 잘 아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개발한 요트다. 자기 신변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외국여행을 즐기고 있다.

 

수발의 충실한 사회인가 아닌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리듬이 있는 삶을 가능케 하고 있는 '데이센터, 식사 서비스, 영송 서비스'의 3대 기본장치. 와상 노인을 만들지 않는 제10. 11, 12의 비밀이다.

  덴마크가 재택복지로 대전환을 한 데에는 이들 '열두 개의 비밀'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위의 도표는 1989년 9월, 후생성의 수발대책검토회를 위해 내가 만든 것이다.

  수발하는 일을 소홀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스스로 신변을 처리지 못하는 사람은 '잠자리 상태'로 방치된다. 욕창이 생기고 좀체 아물지 않는다. '잠자리 상태'에서 보내는 단조로운 시간, 무엇을 하려는 기력도 없어진다. '대소변 수발까지 받고 싶지 않다'는 자긍심은 기저귀로 더렵혀지고, 잠옷바람으로 천정만 보고 있으니 표정도 얼빠지고, 점차 노망이 더해 간다. 몸이 뻣뻣한, 문자 그대로 '누워만 있는', '치매성' 늙은이가 돼 버린다.

  그러나 수발의 질과 양이 충실한 사회에서는 같은 사람이 기상 취침의 리듬 속에서 사람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몸을 깨끗하게 치장하게 된다. 휠체어로 외출도 할 수 있다. 이러면 보통사람이다. 주위에서도 보통사람으로 대한다. 자긍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재택 중시로 전환하는 원점은

 

  그러면, 시설에서 재택으로 전환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재택 쪽이 싸기 때문 아닌가요?" 라는 나의 질문에, 국립사회복지연구소의 얀 부로싱 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프라이엠에 드는 비용은, 1크로네를 25엔으로 치고, 1인당 1개월에 50여만 엔 정도입니다. 장애나 병이 중증인 사람은 재택 쪽이 이보다 훨씬 더 듭니다. 가정도우미나 방문간호부가 찾아가야 되고 주택개량의 비용도 들게 되니까요. 다만 재택은 본인의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잠재능력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생활의 질도 높아지지요. 이런 것을 다 생각하면 재택 쪽이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택 중시로 전환하는 원점은 '고령자 의료복지정책 3원칙' 이었다.

 

  첫째. 인생의 계속성 존중

  생활을 가능한 한 바꾸지 않아도 되도록 지원한다. 

 

  둘째. 잔존 능력, 자기 자원의 활용

  지나친 시중을 지양하며, 보조기구나 주거환경을 지원함으로써 남은 능력을 최대한 끌어낸다.

 

  셋째. 자기 결정의 존중

  자신의 삶의 양식은 고령자 자신이 결정하고 주위에서는 그것을 존중한다.

 

   덴마크의 고령자 의료복지제도 개혁위원회가 3년 걸려 마무리한 보고서의 대목이다. 이 원칙에 의하면 예컨대 시설에서 사느냐 자택에서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관청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이다. 머리 밖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도 자택에서 계속 살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케 해는 방법을 정부는 생각한다. 신변의 일을 그런 대로 차릴 수 있어도 혼자 살기가 적성에 안 맞고 외로움을 타는 사람은 프라이엠을 선택한다.

 

  이 고령자 의료복지제도 개혁위원회의 위원장은 벤트 롤 안데르센 교수로 복지제도론, 사회정책론이 전문이다. 그는 로스킬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고, 자치체 종합연구소의 소장이었으며, 이 위원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런데 예상 외의 사태가 일어났다. 보고서가 마무리되기 직전에 안데르센 위원장 자신이 사회부장관으로서 입각을 요청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보고서는 안데르센 위원장에게서 동일인물인 안데르센 장관에게 전달되는 기묘한 사태가 되었다.

  덴마크의 고령자복지를 세계 제일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 안데르센 씨를 1989년 가을, 동경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아사히신문 주최의 심포지엄 "고령자복지의 내일을 생각한다-와상 노인 제로를 목표로"의 기조연설 부탁드렸더니 사회봉사자인 부인과 함께 먼 일본까지 일부러 와 주셨던 것이다.

  덴마크의 고령자복지가 세계의 교본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안데르센 씨에게 여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