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라이제이션' 이란 무엇일까?
'노멀라이제이션'이란 말과의 첫 만남은 1972년이었다. 의료제도를 취재하려고 스웨덴을 방문한 때였다. 역시 대단한 정보 개방의 나라였다. 다 받아 안을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자료를 넘겨주었다. 그 중에는 영어로 쓰인 <지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위한 스웨덴의 정책>이란 제목의 자료도 있었다. 바로 이 자료 안에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말이 여러 번 되풀이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위한 정책의 기본은 '노멀라이제이션'이다. '노멀라이제이션'은 이 어린이들의 장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 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상화', '정규화', '표준화' 또는 '상태화' 라고 쓰여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풀어 쓴 말들로도 어쩐지 그 뜻이 개운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노멀라이즈(normalize)' 이라는 동사를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표준에 맞추다', '표준화하다', '정규화하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더더욱 모르게 되고 말았다. 귀국 직후에는 '스웨덴의 의료'라는 신문연제물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후에도 의학분야에 관한 뉴스들을 찾기에 바빴다. 게다가 영어에 약한 나의 약점을 핑계로 그 자료 읽기를 아예 체념하고 말았다. 18년 전의 나는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사고방식이 북부 유럽의 복지정책의 흐름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사상이라는 사실에 눈뜨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을 옮긴다' 에서 '서비스가 노인을 찾아간다' 는 생각
'와상 노인'을 찾아나선 1985년도의 여행에서 다시금 이 말과 만나게 된다. 스톡홀름 시 사회국에서 일하는 건축담당관인 '마리 후르츠'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여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1960년대에 노인주택과 장기요양병원 같은 것을 한창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멀라이제이션'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휴스(서비스 주택)'를 짓게 되었습니다. '서비스 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보통 노인들과 똑같이 하루의 일과를 자기에게 가장 알맞게 꾸민답니다. 말하자면 식사는 언제든 자기가 먹고 싶을 때 아래층 식당으로 가셔서 드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식입니다."
"1980년대의 과제는 '노멀라이제이션'을 보다 철저히 자택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시켜 가고 있는 중입니다."
후르츠 씨에 의하면 이 '노멀라이제이션" 의 사고가 중시되기 전에는 서비스에 맞추어서 고령의 노인을 여기저기 옮겨가게 했던 것 같다. '가정도우미'의 수발 시간이 주당 3시간 정도일 때는 자택에서 살게 한다. 5시간 수발이 필요하면 '서비스 주택'으로 이사하도록 한다. 열두 시간 정도가 되면 '슈그헴(병약한 노인용 집)'으로 입주하게 한다. 주당 16시간이 넘어서면 장기요양병원에 입원하도록 한다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간호나 수발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노인이 자택에서 시설로, 시설에서 병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에 따라 1인당 공간, 즉 방이 비좁아져 간다. 자택이라면 스톡홀름에서는 1인당 20평 정도이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거실, 욕실, 화장실, 주방과 방 2개로서, 합치면 다다미 42~43조의 수준이다. 그런데 '서비스 주택'이 되면 1인당 평균 18평, 슈크헴이면 6평 정도이고, 징기요양병원이면 4평이 되듯이 점차 좁아진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옮겨져 가는 노인의 마음에 대단히 큰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노인은 자택에서 여태 지내온 대로 계속 사시도록 하며, 꼭 수발이 필요하면 이쪽에서 찾아갑니다. 필요에 맞추어 수발을 늘려 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폭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후르츠 씨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보통의 생활이 되도록 환경을 맞추어 준다
그때 나는 겨우 정신이 들었다. '노멀라이젠이션' 의 '노멀' 은 '보통'이라는 의미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상화' 등으로 번역되었으니 72년에는 그 자료의 뜻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노멀라이제이션' 을 '아무리 장애가 중증이라도 보통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맞추어 준다.' 라고 번역하였으면 나로서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귀국해서 서둘러 옛날에 가져왔던 자료를 찾아보았다. 자료는 미닫이 안에 처박아 놓은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다시 읽어 보았다. 안개가 걷히듯이 뜻이 바로 읽혀졌다. 이 절의 머리글은 이렇게 번역하면 좋을 것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위한 정책의 기본은 보통의 생활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이 어린이의 장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다면 알 만하다. 자료에는 이렇게도 쓰여 있었다.
노멀라이제이션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① 소수의 그룹으로, 각 방에서, 일상생활을 지낼 수 있도록,
② 남녀 양성이 같이하는 세계에서 생활하도록,
③ 보통의 일상적 리듬을 경험할 수 있도록,
④ 생활공간과 일하는 장소가 다르도록,
⑤ 식사나 음주 등을 가족과 같이 하듯이 몇 사람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⑥ 자유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⑦ 여가 보내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성에 맞추어서 설계되고,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주도록,
⑧ 환경은 연령에 따라 조성하도록,
⑨ 청년들은 어버이로부터 독립이 되도록,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시설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① 소수그룹의 원칙을 지키며 화장실, 욕실, 침실 등을 가능한 한 집단적이 아니도록 한다.
② 시설은 일반 사회 생활권 내에 조성한다.
③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정도의 큰 시설로 하지 않는다.
④ 시설과 사회 양측이 서로 접촉이 되도록 한다.
⑤ 휴일이나 주말은 시설 밖의 다른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
고령자를 시설이나 병원에 격리 수용하고 '잠자리에 누이는' 일들을 그만두자. 장애가 있는 고령자라도 자란 고장에서 몸에 밴 습관대로 계속 살아가도록 하루의 리듬, 일주일의 리듬, 일년의 리듬을 맛보며 즐기면서 사시도록 환경을 갖추어 드리자.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이런 정책 전환은 지적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을 연구 발전시키다가 얻어 응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새삼 뿌리를 캐보면 그것은 덴마크에서 태어난 '노말리세르(Normaliser)' 의 운동이었다.
"어떤 장애를 입고 있더라도 '보통'으로 살아가도록 환경을 개선하여 주는 일." 이 사상을 낳은 아버지 N. E. 뱅크 밋켈센 씨와 만난 것은 1989년 여름의 일이었다.
뱅크 씨는 코펜하겐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대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뱅크 씨는 자신의 몸보다 나의 여행의 피로를 걱정하면서 말씀해 주셨다. 조금 내리처진 안경 넘어에 뱅크 씨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시종 잔잔히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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