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조수와 벤츠의 마중
1,840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난 도미오 군. 그는 네 살이 되어서도 걸을 수 없었다. 조산하여 뇌성마비가 되었다.
혼자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 이런 도미오 군이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우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그와 잘 어울린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와 사귀면서 장애를 가진 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자기도 모르게 몸에 익힌 것 같다.
도미오 군은 핀란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0년 전에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기르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라고 어머니들인 마치코 씨, 야마다 씨, 아루오 씨가 한목소리로 입을 맞추었다. 일본이라면 어버이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이의 손발이 된다치더라도 이만큼의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1988년 가을의 어늘 날 그와 행동을 같이해 보았다.
아침, '고르 아프스타야(학교 조수)'인 파루프 고루베라씨(22세)가 다가온다. 이어서 승강기부착 택시가 두 사람을 마중하러 온다. 벤츠의 대형 택시에서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내려진 도미오 군을 반우들이 달려와 마중하며 "꼭 영화배우 같네!" 하며 동경어린 말투를 한 마디씩 뱉는다. 택시의 마중도 학교 조수도 모두 의무교육법에 따른 서비스라고 한다. 물론 무료다.
그의 자리는 교실의 맨 앞줄. 휠체어용 책상과 전동타자기가 그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장치한 '슬로프(미끄럼틀)', 외출용.가정용.학교용 세 대의 휠체어. 이것들도 의무교육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빌려온 것들이다. 바로 엊그제 휠체어를 탄 채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이 메이하라데 초등학교에 임대되었다고 한다. 일본 엔으로 환산하면 84만 엔(액 700만원)짜리이다.
고루베라 씨는 도미오 군의 손발의 불편을 돕는다. 학교에서는 화장실 수발 등, 집에서는 양친이 돌아올 때까지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한다. 대학수험 재수생이나 진로가 정해진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자원하다고 한다. 많은 보수는 아니지만, 손이 놀고 있을 때면 교실의 뒷구석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사회복지나 교육분야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겐 귀중한 체험이 되기도 한다. 진학이나 취직 때엔 평가점수로 가산되기도 한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자란 '노말리세르'의 사상은 핀란드로 건너와서 '노말리사-데이오'로 이름을 바꿔 교육계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법률,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서비스와 지원법>이 1988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도우미붙이 주택, 엘리베이터 설치, 자동문 설치, 문의 폭 넓히기, 화장실과 수도꼭지 개조 등의 공사, 도우미붙임 나들이 서비스, 재활지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이를 위한 문자전화와 통역서비스. 이런 것들이 지방자치체에 의무화 되어 있다. 혹시라도 지자체가 그 의무를 게을리하면 국고보조가 끊어진다고 한다.
맹인이 시의원이며 건축허가위원회 위원
이 법률을 제정하는 데는 '맹인'과 '휠체어' 부부의 눈부신 활동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그 분들의 자택을 방문해 보았다.
따스한 인품이 몸에서 넘쳐나오는 듯한 부인인 마이야 콩코라 씨. 그녀는 헬싱키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시력을 잃었다.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 절망 중에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29세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남편인 가츠레 콩코라 씨. 동안을 턱수염으로 감추고 있는 투사형이다. 근육 디스토로피(근육무력위축증)로 열 살에 걸음을 놓치고 스무 살 때부터는 호흡보조기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1982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84년에는 시의원에도 당선되었다.(이 나라에선 국회의원과 시원의원을 겸무할 수 있다). 86년에는 국회의원에 낙선되고, 1988년 시의원엔 재선되었다. 나를 만났을 때 마이야 부인의 나이는 42세, 남편인 가츠레 씨는 38세였다.
"새로운 법률에는 장애를 가진 이가 도우미의 급여를 지자체로부터 직접 수령해서 자신이 손수 지불합니다. 말하자면 장애인이 고용주가 되는 셈이지요. 도우미를 골라 쓰는 이점과 함께 우리에게도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가츠레 씨의 경우, 호흡이 끊길 듯하게 급해지면 곧바로 날아오는 도우미가 24시간 체제로 고용되어 대기하고 있다.
마이야 부인은 1984년에 시의원으로 상위권에서 당선되어 건축허가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
"저를 꽤 겁내지요.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모자라는 건물의 건축허가는 결코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여성의원, 점차적으로 남성의원들까지도 당파를 넘어서 내 뜻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극장과 도서관도 장애를 가진 이들이 이용하기 쉽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 같은 것들을 배달해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두 사람은 매년 마이야 부인의 모교에서 특강을 요청받았다.
"강의래야 한 사람이 한 시간씩이에요. 그 전에 중요한 행사가 있지요. 가츠레 씨를 학생들이 휠체어째로 들고서 계단을 오르며, 좁다란 문을 빠져나오지요. 고명하신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실제로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어떻게 거부하고 있는가, 그것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하는 것들이 휠체어를 들고 진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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