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는 휠체어의 고령자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어디를 찾아도 와상노인의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휠체어를 탄 고령자를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상점가에서,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곧 아가사 크리스티의 심경이 되어 어떻게든 이 비밀을 풀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이 미숙한 탐정은 미로에 빠져 들었다.
고령자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 봐도 신통한 답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는 '와상노인'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일본의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물어야 될지···.
여행의 끝이 가까워지던 무렵의 어느 날, 얼핏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어 봤다.
"누운 채로 자기 혼자서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는 반신불수의 고령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어떤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시간대에 따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OECD가맹국의 가정도우미 수(1985년 전후)
실수 | 인구10만명 당 | 일본을 1로 하고 | |
노르웨이 | 41,468 | 889.0 | 51.8 |
스웨덴 | 70,780 | 847.7 | 43.7 |
덴마크 | 24,068 | 471.0 | 24.3 |
네덜란드 | 30,718 | 212.1 | 10.9 |
영국 | 94,122 | 189.1 | 9.7 |
일본 | 23,555 | 19.4 | 1.0 |
※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공인 가정도우미(각각 총수의 4.1%, 8.5%)를 포함. 네덜란드는 전일제로 환산(<병원>. 1989년 1월호 인용)
스웨덴 남부의 한 마을, 마르메에 있는 스로트스타덴 서비스센터에서였다. 그때까지 내 질문의 답을 못 찾아 고심하던 모니카 하마스 트레임 소장은 이제 한숨 놓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질문이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죠."
주민 1만 명에 400명의 도우미
예컨데, 75세로 혼자 사는 브리타 할머니.
그녀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15년 전부터 반신불수이다. 당뇨병이 있고, 협심증 발작을 자주 일으키지만 정든 자기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아침
가정도우미가 브리타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면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먼저 창문을 연다. 그녀를 침대에서 일으켜 주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도록 도와주며, 세면과 이닦기를 도와준다. 오늘은 어느 옷을 입겠느냐고 물어 옷을 입히고 휠체어에 태운다. 가벼운 아침식사를 차리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뒤, "점심 때 또 뵙겠습니다!" 하고 돌아간다.
정오
같은 도우미가 다시 돌아온다. 휠체어를 밀고 데이센터의 식당으로 간다. 외출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날에는 따뜻한 점심이 센터에서 배달되므로 이것을 탁자에 차리고 말 상대가 되어 준다. 그녀는 고양이를 귀여워하므로 그 치다꺼리도 하고, 관엽식물을 끔찍이 아끼므로 화분에 물 주는 일도 한다. 정해진 요일에 따라 세탁, 청소, 쇼핑을 하고 그녀가 원하면 휠체어를 밀고 함께 쇼핑하러 나간다.
저녁
아침, 점심과는 다른 가정도우미가 저녁식사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
야간
다시 도우미가 온다. 이닦기를 돕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침대에 눕혀 준다.
이 서비스센터는 주변 1길로미터 이내에 사는 1만 세대, 1만 5천명의 인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센터를 중심으로 가정도우미 대기소가 20개소 배치돼 있고, 그것을 거점으로 400명, 33개 팀의 가정도우미가 운신하지 못하는 고령자나 신체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1만 명의 지역에 400명의 가정도우미가 있다! 아침에 깨워 주러 오는 도우미가 있다! 그 많은 수와 일의 내용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1주일에 1회 방문하고 2시간 정도 가사를 돌봐주는 사람. 이것이 일본에 사는 나의 가정도우미, 즉 가정봉사원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나라들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의 노인이 없다. 그 최대의 비결은 일상생활에서 때맞춰 나타나는 가정도우미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이 매일 아침 '일으켜' 주니까 '누워 있는 상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잠자리'에 그대로 놔두니까 '누워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일본에 있을 때에는 예상도 못했던 '발견'이었다.
정신의료의 세계에서조차 - 이태리에서
아줌마도 큰일이군요
1970년의 추운 겨울 아침의 일이다. 나는 남편을 택시에 싣고 동경 교외에 있는 한 정신병원으로 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만취가 되어 곯아떨어져 있었다. 차 안은 온통 술냄새와 토해낸 퀴퀴한 냄새로 꽉찼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비는 나에게 운전기사가 말했다.
"나중에 씻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저런 알콜중독자인 남편은 가진 아줌마가 큰일이군요."
운전기사의 이런 말을 들으니 내 양심이 꽤난 무거워졌다. 실은 남편은 알콜중독자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콜중독자로 가장해서 정신병원에 잠입해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병원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나는 술을 좋아하긴 해도 절대 알콜중독은 아니오."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 발로 정신병원을 찾아가 "저 알콜중독인데요. 입원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금방 수상히 여길 것이다.
그래서 연극끼가 있고 더구나 '알콜중독자의 친구'라는 배역에 꼭 알맞는 풍모를 한 사회부의 후배인 사토 구니오 기자에게 응원을 구했다. 나는 감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동여매고 유행에 처진 옷을 걸치고 지쳐빠진 마누라로 분장을 했다. 택시를 부르고 따라붙였다. 좋은 징조일까? 우선 택시기사가 남편을 '진짜'로 생각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그 후의 일은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갔다. 병원장이 "야. 이거 한잔 걸쳤군. 입원이야 입원!" 이라고 진단하자 건장한 사나이가 나타나 남편의 팔을 움켜잡고 쇠창살 너머로 끌고 간다. 따라가려는 나에게 병원의 직원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가족은 더 들어가지 못해요!"
이 병원은 게이오 대학 출신의 정신과 의사가 원장이고, 동대 출신의 고명한 정신과 의사가 고문이며, 격식을 갖춘 간호학교의 실습병원이기도 하다. 결코 '일부의 악덕병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곳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 쓰레기장'이다. '작업요법'으로 불리는 부업이나 사역, 그리고 착취, 협박용 전기충격, 얼어붙을 듯이 추운 방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형편없는 식사, 빈약한 치료, 언제 쇠창살의 병동에서 나올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불안···.(상세한 것은 아사히신문사 간행, 오쿠마 이치오 저, [르포 정신병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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