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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노인복지 혁명_기저귀를 차고서도 멋을 낼 수 있다(비밀 1)

by 노인생활코디네이터 2024. 10. 21.

이야기의 시작

도우미와 방문간호부의 방문 / 덴마크
추억이 서린 물건들과 함께 프라이엠 생활 / 덴마크
데이센터의 베틀로 재활 훈련을 하는 남성 / 덴마크
재활 훈련의 대기실에서 / 덴마크
저렴한 데이센터의 미용실 / 덴마크
교실의 도미오 군 / 핀란드
장애가 있는 사람이 경영하는 상점 / 덴마크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그룹홈 / 스웨덴
중증신경질환인 사람도 거리로 / 덴마크
정신병이 있는 사람도 시중 상점에서 즐겁게 일한다 / 이태리

 

 

 

  만국 공통이 아니었던  '몸져누운 노인'

 

  일찍이 고령사회에 들어선 국가에는 '몸져누운 노인' (이하, 와상노인) 에 대응하는 낱말이 없다. 일본에서는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할 만한 사람들도 그곳에선 휠체어에 타거나, 보행기를 이용해 '걷고' 있었다.

 

  위의 글은  1985년 경로의 날, 아시히신문 1면에 실린 논설 「좌표」의 한 대목이다. 그때 나는 이 글을 조심스레 썼다. 정말 이렇게 정해 버려도 괜찮을까?

  아니나 다를까, 일본의 노인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표현에 반발감이나 의심을 품게 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오메 게이오 병원의 오즈카 노부오 원장은 뒤에 이렇게 잡지에 썼다.

 

  "이것은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무언가 잘못 알고 있든지, 아니면 어떤 조작이 있는 게 틀림없다."

 

  '흠잡기의 명인'을 자처하는 한낭 주오 병원의 오카모도 유조 원장은 다른 잡지에 이렇게 썼다.

 

  " '덴마크에서는 와상노인을 보지 못했다'고 보고된 것을 필자도 전에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이 좋은 곳만 보여 줬든가 아니면 보는 사람이 '그렇거니' 하고 구석구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간호학원의 가와지마 미도리 여사도 이렇게 쓰고 있다.

 

  "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 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위의 세 사람은 그 후에 유럽의 각국을 방문하고 '와상노인'을 전제로 한 의료나 복지가 일본 특유의 현상임을 깨닫게 된다.

 

  실은 나도 「좌표」를 쓰기 1개월 전까지는 '와상노인'은 만국 공통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의 노인병원이나 특별양호노인홈(양로원)을 찾아가 보면 그곳에 있는 분들은 얼빠진 눈에, 손발은 야위고, 관절은 굳어 버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잠옷차림···. 문자 그대로 '잠자리' 에 즐비하게 누워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사람이란 늙고 반신불수가 되거나 골절하거나 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취급한 책을 펼쳤더니 "지금 일본에는 48만 명의 몸져누운 노인이 있다." 고 씌어 있었다. 정부는 "2000년에는 몸져누운 노인이 100만 명을 넘는다" 는 예측을 하고 거기에 따른 행정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00만 명의 와상노인' 을 전제로 미래가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와상노인'이란 말이 없는가?

 

  내가 아사히신문의 논설위원이 된 지 1년만의 일이었다.

  과학·기술·의학·의료라는 과학부의 업무 범위에 더하여 복지와 연금에 관한 사설도 담당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이 새로운 담당분야 중에서 '와상노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특히 관심이 쏠렸다.

  때마침, 몸져누워 있는 늙은 어버이, 늙은 아내의 치다꺼리에 지친 살인이나 동반자살 등의 기사가 신문에 자주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와상노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넋 잃은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삶의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럽에는 일본보다 훨씬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이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런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 현장을 방문해 보면 문제의 해결 방향을 사설에서 제안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나는 1985년 여름, 먼저 동구의 헝가리, 다뉴브강을 건너 오스트리아, 서독을 지나 스웨덴, 덴마크로 여행을 떠났다.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와상노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와상노인의 수발은 누가 어디서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아무리 물어봐도 이들 나라에서는 정확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지어의 통역이 하나같이 엉터리기 때문인가고 의심했다. 그러나 다른 질문은 잘 통했다. 예컨대 '간호가 필요한 노인 ' 이라는 말은 그대로 통했다. 그렇다면 통역이 엉터리인 탓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와상노인'이라는 말이 들어간 질문을 하면 그때만은 ' 이 일본인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표정이 돌아왔다.

  아마도 '와상노인'이라는 개념은 독일에도 덴마크에도 스웨덴에도 헝가리에도 없는 것 같다고 깨달은 것은 스웨덴에 입국한 무렵이었다.

 

  "왜 '와상노인'이라는 일상용어가 이들 나라에는 없는가?" 이 소박한 질문이 내가 지금부터 쓰는 사소한 '발견'을 거듭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와상노인'이라는 말이 왜 통하지 않을까?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다 보니 고령화 사회의 문제라는 입구로 들어간 나는 어느새 이 나라들의 주택이나 도시계획, 민주주의나 지방자치, 세금의 징수 체계와 지출 체계, 자기 결정과 자립 문화, 그리고 노멀라이제이션(Nomalization:정상화)이라는 사상으로 이끌려 갔다.

  '정신박약', '신체장애인'. '중증 심신장애인', '정신장애인' 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신세와 '와상노인'의 존재와의 깊은 관계를 깨닫게 됐다.

 

제1장 '몸져누운 노인'이 없다!

 

기저귀를 차고서도 멋을 낼 수 있다(비밀 1)

 

  어디에 숨겨지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물어보고 여기저기 살펴보고 하던 중 먼저 이런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천장을 향해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와상노인'이라고 부를 만한 노인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일본의 특별양호노인홈에 해당하는 시설이나 노인병원에 해당하는 병원을 방문해도 침대의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빈 침대에는 화려한 색깔의 침대 커버가 덮여 있을 뿐이다.

  혹시 되부 손님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방이 있고, 거기에 '와상노인'이 숨겨져 있지나 않을까? 그렇게 의심한 나는 점잖지 못하게 방을 잘못 찾은 체하면서 여기저기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집단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헝가리에서 몇 사람 보았을 뿐이다.

  그 대신에 일본에서는 '와상 상태'가 될 만한 사람들, 예를 들면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나 중증류마티스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거거 보행기를 이용하여 '걷고 있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했다. 목의 윗부분만 움직일 수 있는 신경난치병 환자도 전자식 휠체어를 몰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에서 서독, 서독에서 스웨덴으로 국경을 서쪽으로 이동해 감에 따라 몸이 부자유스러운 노인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신불수라도 혼자 살 수 있다 !

  아래의 사진은 여행의 마지막에 방문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는 어느 고령자 데이센터(주간보호)에서 촬영한 것이다. 연분홍 바탕에 꽃잎 무늬가 돋보이는 드레스, 아름답게 다듬어진 은발, 귀고리, 립스틱, 매니큐어···. 경제면에서나 건강상으로도 혜택받은 사모님 같은 모습이다.

반신불수로 기저귀를 떼지 못하는 사람도 모두 우아하게 차려 입는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이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은 휠체어였다. 그녀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반신불수, 왼쪽 손발이 부자유스러운 상태였던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면 잠옷 바람으로 하루 종일 침상에서 지내며, 머리는 성별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깎여 있을 것이다.

  한 청년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귓가에 입을 대고 다정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그녀가 그에게 무어라고 대답하니 그 청년은 선뜻 물러갔다. 몇 분 후, 그는 고기와 샐러드를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귓가에 속삭이듯이 무언가 얘기하고 있다. 이윽고 그는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청년은 일본에서 말하는 요모(가정도우미)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대화에서 그는 그녀에게 점심 식사의 메뉴를 물었고, 두 번째 대화에서는 고기를 써는 방법과 크기를 확인했던 것이다. 젊은 남성이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나는 유럽에서 자주 목격했다. 병역 대신 이러한 평화적 임무를 선택한 젊은이들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복무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분홍 드레스의 이 부인과 이야기를 해 봤다. 남편을 사별한 주부였다. 국민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자택에서 혼자 살며, 기저귀가 필요한 몸이라는 것이다. 기저귀를 하고서도 멋을 낼 수 있는 문화가 이 지구상에 있다! 반신불수라도 자택에서 혼자 지낼 수 있다! 그것도 국민연금만으로!

  나로서는 큰 발견이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풍요가 아닐까. 이 감동에 등을 떠밀려 나는 조심스레, 그리고 담담하게, 이 책의 머리글에 쓴 것 같은 내용의 칼럼을 썼던 것이다.

 

  기쁜 심정과 불안

휠체어뿐만 아니라 갖가지 형태의 보행기나 지팡이가 사용되고 있다. - 스톡홀름 데이센터에서
어느 침대에도 '와상노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 후 여러 나라를 방문한 나는 자신있게 일본의 빈약한 복지와 의료, 그 배후에 있는 빈약한 정치와 빈약한 문화가 몇십만 명의 '와상노인' 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일본에서만 '와상노인' 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그 이유도 거의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와상노인' 이라는 불경스러운 관청용어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설을 통해 제안했다.

 

  「좌표」를 조심스레 쓰고 나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후생성과 자민당은 '와상노인 제로작전' 과 '골드 플랜' 을 1990년도 정책의 주요과제로 내세웠다. 사회당은 "잠자리 상태를 면하게 하는 것은 나라의 책임" 이라고 강조하는 정책대강을 발표했다. 공명당은 '와상노인 수당' 을  '수발수당(개호수당)' 으로 바꿨다. 공산당은 " '와상노인' 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전력을 다해 분투하겠다." 고 공약했다. 

  " '와상노인' 이라는 말이 선진국에는 없다고 한다." 며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분도 있다. 이런 말을 듣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심정. 그것은 기쁜 심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일본이 각 정당이 공약한 사회로 되어 갈 것인가 하는 불안도 떨쳐 버릴 수 없다. 자민당은 '자조노력' 을 강조하며, 야당은 복지의 재원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회피만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