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인이 달려왔다
북유럽의 가정도우미의 수는 일본과는 자릿수가 다르다. 그러나 일본의 '며느리'처럼 항상 옆에 있지 않다. 하루 생활 중 필요한 때에만 있을 뿐이다. 증상이 심한 사람은 주 20시간, 가벼운 사람은 2시간 정도이다.
그러면 그 사이에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무언가 해 줚으면 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했다. 도우미 대기소에 전화를 하면 된다. 그러나 만일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거나 발작이 나서 전화를 걸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걱정이 내 마음에 생겼다.
그런데 그 답이 요행히 내 눈앞에서 전개됐다. 1987년, 덴마크의 홀베크에 체재 중, 방문간호부의 붉은 전용차에 동승하여 크라우센 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크라우센 할머니는 96세, 남편과 2년 전에 사별하여 홀몸이다. 자식은 없다. 가령 딸이 있었다고 해도 벌써 70세일 것이다. 음식도 이젠 자기가 만들지 못한다. 걸음도 신통치 않고 기저귀도 몸에서 뗄 수 없다. 만성병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널찍한 거실과 식당, 벽에는 액자에 담긴 풍경화와 초상화가 여러개 걸려 있었다. 오래 쓴 탁자, 그 위에 촛대와 도자기 장식품, 크라우센 부인은 밝은 녹색 스웨터 차림으로 넓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무슨 사연이 있을 듯한 작은 상자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상자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 상자의 녹색 단추를 누르면 누군가가 달려와 준답니다. 지난주에도 넘어져 이마를 부딪쳐서 도움을 청했지요." 라고 부인은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몇 분 후의 일이었다. 문 밖에서 갑자기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니 건장한 거인 같은 남자 두 명이 뛰어들어왔다.
"크라우센 부인!"
아마 노부인은 작은 상자를 설명하던 중에 깜박 단추를 눌러버린 모양이다. 단추를 누르면 발신기에서 신호가 나가고, 그것이 소파 뒤에 놓인 기계에서 증폭되어 이 거인들의 대기소까지 가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다.
한 사람은 턱수염을 기르고 검은 안경을 쓴, 위압감을 주는 얼굴이다. 어린 시절, 그림책의 삽화에서 본 '알라딘의 마법의 램프'에 나오는 거인 같았다. 램프를 문지르면 굵고 큰 목소리로 "부르셨습니까, 나으리." 하고 나타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 거인을 닮았다.
크라우센 부인은 다소 계면쩍은 표정이었다. 나에게 서비스하느라 눌러 줬는지, 아니면 연세탓으로 무심코 눌렀는지, 어쨌든 내가 원인이었다. 나는 아주 난처해졌다. 나의 질문 탓으로 노부인이 야단을 맞으면 어떡하나,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움츠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거인은 큰 소리로 웃고 나서 '거 참 다행이다!'고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방문간보부는 "어머나" 하고 웃으며 어깨를 치켜올렸다. 때마침, 가정도우미가 들어와서 사건의 전말을 듣고는 한바탕 웃었다. 그녀는 크라우센 부인과 부인의 고양이 '나비'의 점심을 차리기 위해 이때 도착했던 것이다. 참으로 따뜻한 풍경이었다. 네 사람의 웃음소리에 마음놓고 셔터를 누른 것이 다음의 사진이다.
일본에서는 지금 총인구의 11퍼센트가 65세 이상이지만 덴마크에서는 벌써 16퍼센트가 되었다. 일본의 14.5년 앞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노부인처럼 96세의 홀몸으로 자기 신변을 차릴 수 없게 되어도 '추억이 가능한 나의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중심 인물들이 우연히 한 장의 사진속의 주인공이 된, 이들 네 사람이다.
쉽게 쓸 수 있는 'SOS'
이러한 SOS시스템은 일본의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하고 있다. 단, '생사에 관할 때만 눌러야 한다'고 엄하게 다짐하는 것이 보통이다. 단추를 누르면 정말 생사에 관한 상태인지 먼저 그것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 오는 경우도 있어 노인들은 심기가 편치 않다. 명치 시대에 출생한 분들에게는 사용법이 너무 까다로운 것도 있다. 급할 때 달려갈 자원봉사자가 부족하여 개점휴업인 곳도 적지 않다.
북유럽에서는 장소에 따라 방법은 다르지만 정신은 같았다. 스웨덴의 마르메에서는 손목시계형의 SOS벨을 보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면 문자판에 해당되는 부분을 누른다. 그러면 자택의 전화가 지역 서비스센터의 도우미 대기소에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수화기를 들지 않아도, 방의 어디에 있어도 말만 하면 센터와 대화할 수 있다. 말소리가 없거나 신음소리만 들리거나 하면 2인조의 도우미가 달려온다.
놀라운 것은 그 SOS의 내용이었다. 100회 중 98회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 '오늘 밤은 TV가 재미있으니 재우러 오는 것은 이 프로가 끝난 후로 해 달라', '어쩐지 적적해서···.' 하여간 일본의 상식적 '긴급'하고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모두다 절실한 요청이다. 그것을 도우미들은 잘 이해하고 '이런 하찮은 일로 SOS를 보내다니' 하는 따위의 불만스러운 표정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안심'이나 '행복'은 이런 작은 희망이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쌓여갈 때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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